이태원 옥상 있는 월세 집에서 4년 살며 겪었던 후기
이사를 여러 번 다녔지만, 지금도 제일 먼저 떠오르는 집은 이태원의 그 집이다. 옥상에 인조잔디를 깔고 캠핑 텐트를 세워둔 루프탑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공간'이라는 걸 제대로 가져봤다. 2021년에 다방 앱으로 찾아 들어간 집인데, 여기서 골든리트리버를 분양받아 키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4년을 살았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130만원, 남이 보기엔 그냥 투룸이였겠지만 나한테는 추억이 가장 많이 담긴 집이었다. 그리고 그 집을 떠나 이사하고 나서야, 그때 내가 얼마나 겁 없이 도장을 찍었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다방 앱으로 찾은 이태원, 보증금 1천에 월세 130
집을 구할 때 부동산부터 찾아가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그냥 다방 앱을 켜고 며칠을 들여다봤다. 퇴근하고 나서 침대에 누워 매물을 넘겨보는 게 그 며칠간의 일과였다. 손가락으로 사진을 넘기다가 이태원 쪽에 눈이 멈췄다. 그 무렵 나는 강남에 있는 빌딩 매매 부동산 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하루 종일 남의 건물 사고파는 일을 하다 보니 정작 내가 살 집은 앱으로 대충 고르고 있었던 게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다. 이태원에서 차로 출근하면 편도 15분이면 회사에 도착했다. 위치만 놓고 보면 강남이랑 더 붙어 있는 동네도 많았지만, 굳이 이태원을 고른 건 낭만도 있었다. 혼자 사는 김에 서울에서 제일 색깔이 뚜렷한 동네에서 한번 살아보고 싶었다. 출퇴근이 편한것도 큰 이유이다.
결정타는 루프탑이었다. 매물을 보다가 옥상이 상당히 넓게 나온 집을 발견했는데, 그걸 보는 순간 다른 조건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방 크기가 어떻고 채광이 어떻고를 따지기 전에, 저 옥상에 뭘 깔고 뭘 놓을지부터 머릿속에 그려졌다.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130만원. 월세가 싸다고는 못 하지만, 그 옥상을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그 값이 아깝지 않았다. 집을 보러 가서도 방보다 옥상에 더 오래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부동산에서 나온 사람이 방 설명을 하는데 나는 이미 옥상에 마음이 가 있었다. 조건을 오래 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계약을 했다. 방이 조금 좁아도, 월세가 조금 부담돼도 상관없었다. 그렇게 2021년, 이태원 생활이 시작됐다.
루프탑에 인조잔디를 깔고, 골든리트리버가 왔다
이사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옥상 꾸미기였다. 맨바닥이던 루프탑에 인조잔디를 쫙 깔았다. 초록색이 깔리니까 공간 분위기가 통째로 바뀌었다. 거기에 캠핑 텐트를 하나 세우고, 밤에 켤 조명까지 달았다. 낮에는 잔디밭, 밤에는 조명 아래 텐트. 누가 보면 카페 하나 차린 줄 알 정도였다. 실제로 완성해놓고 보니 딱 반려견 카페 같은 느낌이었다. 그 공간을 만들어놓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음 생각이 따라왔다. 이 옥상에 강아지가 뛰어놀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서 골든리트리버를 분양받았다. 이태원으로 이사 온 게 강아지를 키우게 된 계기가 된 셈이다. 넓은 옥상이 없었으면 아마 엄두도 못 냈을 거다. 좁은 투룸에서 대형견을 키운다는 건 애초에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옥상이 있으니 마음이 그쪽으로 흘렀다. 강아지는 인조잔디 위에서 뒹굴고, 나는 텐트 앞에 앉아 그걸 보고 있으면 하루가 갔다. 퇴근하고 올라와 조명 켜고 강아지랑 옥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그 시절 내 하루의 마무리였다. 그 골든리트리버가 지금은 다섯 살이 됐고, 이사를 다니면서도 계속 쭉 같이 살고 있다. 결국 이태원 그 집이 나한테 남긴 제일 큰 건 옥상도 낭만도 아니고 이 녀석이었던 것 같다.
이태원에는 그렇게 4년을 살았다. 여름엔 텐트 그늘에 앉아 있었고, 겨울엔 조명만 켜두고 잠깐 올라갔다 내려오곤 했다. 혼자 사는 낭만으로 시작한 동네였는데, 나올 때쯤에는 그보다 훨씬 진한 게 쌓여 있었다. 처음엔 그냥 색깔 있는 동네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가벼운 마음이었는데, 강아지가 생기고 그 옥상에서 4년치 저녁을 보내고 나니 이태원은 나한테 완전히 다른 무게의 장소가 됐다. 지금도 이태원은 그냥 지나가는 동네가 아니라, 내 추억이 통째로 박혀 있는 좋은 동네로 남아 있다.
4년을 살고 떠나며, 보증금이 작아서 몰랐던 것
그 집을 계약할 때 나는 사실 별로 신경 쓴 게 없었다. 등기부가 어떻고 권리관계가 어떻고를 따지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보증금이 1천만원이었으니까. 설령 무슨 일이 생겨도 내가 잃을 수 있는 돈이 딱 그만큼이라, 크게 불안할 게 없었던 거다. 월세가 130만원으로 나가는 구조라 목돈이 묶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는 전세사기라는 말이 지금처럼 무섭게 와닿지도 않았다. 계약서에 도장 찍고, 옥상 꾸밀 생각에 들떠 있었을 뿐이다.
뉴스를 보다가 생각이 좀 바뀌었다. 2022년 빌라왕 사건이 터지고 나서부터 전세사기가 계속 뉴스에 오르내렸다. 2023년에 특별법까지 만들어졌는데도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인정된 피해자만 3만 명을 넘어섰다고 하고, 그 피해가 대부분 나 같은 청년층·서민층에 몰렸다는 이야기였다. 그걸 보면서 든 생각이, 내가 그때 마음 편하게 계약할 수 있었던 건 내가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냥 보증금이 작아서였다는 거다. 만약 그 집이 보증금 몇 억짜리 전세였다면, 등기부 한 장 안 떼어보고 옥상 사진에 반해서 도장 찍은 나는 위험한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다음에 집을 구할 때, 특히 보증금이 큰 전세로 갈 일이 생기면 나는 반드시 등기부부터 떼서 권리관계를 확인하고, 보증보험 가입이 되는 집인지, 집 시세에 비해 보증금이 너무 크지는 않은지부터 볼 생각이다. 사업으로 남의 계약서는 숱하게 봐왔으면서 정작 내가 살 집은 옥상 사진 하나에 넘어갔던 걸 생각하면, 그때는 그게 배짱이었는지 운이 좋았던 건지 잘 모르겠다. 이태원 그 집은 나한테 낭만과 강아지를 남겨준 고마운 집이지만, 동시에 '보증금이 작아서 겁 없이 계약해도 됐던 마지막 집'이기도 했다. 다섯 살 된 골든리트리버를 데리고 다음 집을 알아볼 때는, 옥상 사진보다 등기부를 먼저 보게 될 것 같다. 그게 이태원 4년이 나한테 남긴 또 하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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