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노점상으로 떡볶이 팔았던 경험 후기


처음부터 6개월짜리 경험으로 계획한 거였다. 군대 전역하고 26살, 뭔가 해보고 싶은데 한국에서 바로 취업하기는 싫었다. 태국에서 떡볶이 노점을 열었고, 3개월 동안 지하철역 앞에서 퇴근길 장사를 했다. 단골도 생겼고 매일 꾸준히 팔렸는데, 하루 순익 3~4만 원이라는 숫자 앞에서 결국 계산을 해야 했다. 그 3개월 동안 겪은 이야기를 쓴다.

태국 떡볶이 노점, 처음부터 6개월짜리 계획

나는 사업을 하러 간 게 아니라 경험을 하러 간 거였다. 그 차이가 크다. 사업이었으면 시장조사부터 했을 텐데, 나는 "일단 가서 해보자"였다. 친구가 알던 태국인 명의로 노점 허가를 받았고, 자릿세는 월 3만 원이었다. 한국에서 상상도 안 되는 금액이다. 물론 태국이니까 가능한 거지만, 그래도 월 3만 원짜리 자릿세를 내고 합법적으로 장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외국인이 태국에서 직접 명의로 노점 허가를 받는 건 복잡하다. 그래서 현지인 명의가 필요했고, 친구의 태국인 지인이 그 역할을 해줬다.

떡볶이를 고른 건 단순했다. 태국 음식 자체가 매운 게 많으니까, 한국식 매운맛도 거부감이 적을 거라고 봤다. 실제로 그 판단은 맞았다. 떡볶이를 처음 먹어보는 태국 사람들도 "맵긴 한데 맛있다"는 반응이었다. 푸딩은 사이드 메뉴로 넣었다. 떡볶이 하나만 팔면 객단가가 너무 낮았고, 매운 거 먹고 나서 달달한 거 하나 집는 흐름을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떡볶이 사고 푸딩까지 같이 사는 사람이 꽤 있었다. 초기 비용은 거의 안 들었다. 조리 도구 몇 개, 재료비, 그리고 자릿세. 한국에서 가게 하나 여는 것과 비교하면 말이 안 되는 수준이었다. 대신 모든 걸 직접 해야 했다. 재료 사러 시장 가고, 떡볶이 만들고, 팔고, 정리하고. 혼자 다 했다. 떡은 한인마트에서 샀고, 고추장도 한국 거 썼다. 현지 재료로 대체할 수 있는 건 대체했지만 떡이랑 고추장만큼은 타협하면 맛이 달라졌다. 한인마트가 숙소에서 멀어서 재료 사러 가는 날은 반나절이 날아갔다. 레시피를 따로 배운 건 아니고, 한국에서 먹어본 맛을 기억해서 만들었다. 처음에는 간이 맞질 않아서 며칠은 버렸다. 그게 26살짜리가 해외에서 장사를 배우는 방식이었다.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매일 반복하면서 몸으로 익히는 거였다.

퇴근길 3개월, 단골이 생긴 지하철역 앞

자리는 태국 지하철역 앞이었다. 오후 4시부터 7시 반까지, 퇴근길 사람들을 상대로 팔았다. 하루에 세 시간 반. 이 시간대가 중요했다. 아침이나 점심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저녁 늦게까지 하면 체력이 안 됐다. 퇴근길 딱 그 시간에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그 흐름을 타는 거였다. 세 시간 반이 짧아 보이지만, 그 안에 준비부터 정리까지 다 해야 했다. 3시쯤부터 자리 세팅하고 재료 꺼내서 준비하고, 4시에 첫 손님 받고, 7시 반에 불 끄고, 8시까지 정리. 실제로는 다섯 시간 가까이 움직이는 셈이었다.

운이 좋았던 건 경쟁자가 없었다는 거다. 그 지하철역 앞에서 떡볶이를 파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독점이었다. 태국 노점이 워낙 많긴 한데, 한국 음식을 파는 노점은 거의 없었고, 하필 내가 잡은 자리 근처에는 비슷한 메뉴가 아예 없었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구경만 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사먹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 영향인지 "한국 음식"이라는 것 자체에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도 많았다. 지나가다 사진부터 찍고, 한참 구경하다가 결국 하나 사는 사람들이 있었다. 태국어를 거의 못했는데, 가격은 숫자로 적어놓으면 됐고, 메뉴는 떡볶이랑 푸딩 두 개뿐이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끝이었다. 말이 안 통해도 장사는 됐다.

3개월쯤 지나니까 단골이 생겼다. 매일 오는 사람이 다섯 명은 됐다. 퇴근하면서 습관처럼 들르는 거다. 이름은 몰랐지만 얼굴은 다 알았다. 어떤 아줌마는 매번 "덜 맵게"라고 했고, 어떤 젊은 남자는 항상 떡볶이에 푸딩까지 세트로 샀다. 단골이 생기니까 장사가 안정됐다. 매일 최소 이 정도는 팔리겠구나 하는 감이 잡혔다. 하루 매출이 들쭉날쭉하면 재료 준비량을 못 잡는데, 단골이 바닥을 깔아주니까 거기에 맞춰서 준비하면 됐다. 남는 건 거의 없었지만, 버리는 것도 거의 없었다. 그게 소규모 노점의 장점이었다.

하루 3~4만 원, 현상유지비밖에 안 되는 숫자

3개월 동안 장사를 하면서 하루 순이익은 대략 3만~4만 원 사이였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처참한 숫자다. 그런데 태국 기준으로 봐도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었다. 내가 있던 당시 태국 1인당 월 소득이 대략 40만 원 정도였는데, 하루 3만 원이면 월 90만 원이다. 태국 평균의 두 배 정도.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이건 내 인건비까지 포함된 숫자다. 내가 하루에 다섯 시간 가까이 직접 만들고 팔아서 나오는 돈이니까. 사람을 쓰면 남는 게 없었다.

문제는 스케일이었다. 하루 3~4만 원이면 태국에서 먹고 자는 건 됐다. 숙소비, 밥값, 교통비 내고 나면 남는 건 거의 없었다. 현상유지비였다. 돈을 모으는 게 아니라, 쓰는 만큼 벌고 있는 거였다. 독점 자리에서 경쟁자 없이 장사해도 이 정도가 천장이었다. 자릿세 3만 원짜리 독점 자리도 결국 현상유지가 한계라는 걸 몸으로 깨달은 거다.

장사를 더 키우려면 나이트마켓으로 가야 했다. 지하철역 앞 퇴근길 장사는 시간도 짧고 유동인구도 한정적인데, 나이트마켓은 저녁부터 밤까지 관광객까지 잡을 수 있으니까. 나이트마켓 자리를 알아봤다. 월세가 70만~80만 원이었다. 자릿세 3만 원짜리에서 장사하던 나한테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거기에 인테리어, 간판, 추가 장비까지 하면 최소 여유자본 천만 원은 있어야 시작이라고 판단했다. 나한테 그 돈은 없었다. 계산이 끝난 거다. 6개월 계획으로 시작한 장사였고, 3개월 만에 천장이 보였다. 지하철역 앞에서는 아무리 잘해도 하루 3~4만 원이 한계였고, 그 다음 단계로 가려면 자본이 필요한데 그걸 이 장사로 모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실패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해외에서 직접 물건 만들어서 팔아본 경험, 단골이 생기는 과정, 스케일의 한계를 몸으로 느낀 것. 그게 26살 나한테는 돈보다 값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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